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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고아의날

 유달산 능선을 따라 노란 개나리 꽃망울이 부푸는 봄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나는 저녁 식사 시간까지 잠시 원의 같은 또래 아이들과 도깨비불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철이 형이 놀려대는 바람에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쪽발이 주제에!”

 

 “뭐? 내가 왜 쪽발이야?”

 

 “그렇담 그런 줄 알아. 너 말야, 네 어머니가 쪽발이니까 너도 쪽발이 아냐?”

 

 “아냐 어머니는 쪽발이가 아냐.”

 

 “건방진 녀석”

 

하고 내뱉는가 싶더니 갑자기 철이 형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 들어왔다.

 

 “원장 아들이라고 잘난 척하지 마.”

 

 으름장을 놓는 철이 형의 얼굴에는 일종의 증오감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그 무렵 나를 쪽발이라고 부르는 건 비단 철이 형만이 아니었다.

 

 일본인을 멸시해서 부르는 쪽발이란 말이 나는 몸서리치도록 혐오스러웠다.

 

 이런 수모를 당할 적마다 내가 왜 쪽발이라고 놀림을 당해야 하는지, 또 언제까지 이런 형들과 같이 생활해야 하는지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를 고아들 속에 넣어두고 매일 일에 묻혀 사시는 어머니가 언젠가 한 번 본때를 보여주리라 벼르고 있는 형들보다 더 밉게 느껴졌다.

 

 “네 어머니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여기서 살지 못해. 곧 추방될지 모른다구.”

 

 빈정거리는 듯한 철이 형의 말투에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쪽발이에요?”

 

 하곤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울지 마라. 누가 그런 소릴 하더냐?”

 

 심각한 얼굴로 어머니는 내 어깨를 감쌌다.

 

 “모두 다 그러던데? 어머니가 쪽발이기 때문에 머잖아 일본으로 강제 귀국할 거라고요. 정말이에요? 어머니, 정말 추방당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뭐 때문에 엄마가 추방되겠니? 엄마는 말이야,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 거란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자신이 일본 여자란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손가락질받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대처하고자 마음먹지만,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 * *

 

 나는 6학년 때 야맹증에 걸렸다.

 

 처음엔 이 삼 일 지나면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돼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기분도 나지 않고 밤중에 외출하는 일 따윈 엄두도 못 낼 지경이 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상을 설명해도 처음엔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익숙한 길도 어두워지기만 하면 공포의 대상이었다.

 

 평평한 길에서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6학년이 되자 중학교 진학에 대비한 과외 수업이 시작되었다.

 

 저녁까지 계속되는 공부에 나는 창밖에 신경이 쓰여 안절부절못했다.

 

 거기다 수업은 우리 반이 맨 마지막으로 끝나곤 했다.

 

 귀가하는 산길을 혼자서 걷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비탈길을 오를 때는 그런대로 수월했으나 문제는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은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비라도 올 때면 흙 위로 삐져나온 돌 때문에 이쪽저쪽으로 넘어졌다.

 

 그날도 비 때문에 나는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지팡이로 길을 더듬어 나아갔다.

 

 걷는다기보다 더듬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렀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옆으로 넘어졌다.

 

 가방과 지팡이가 날아가 버려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땅 위에 주저앉은 채 손을 더듬었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어머니는 내가 이런 지경인 줄 꿈에도 모르실 거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미웠다. 모든 것이 싫어졌다.

 

 학교에 다니는 일도 이젠 지긋지긋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손으로 더듬어 다리를 건넜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겨우 공생원에 도착했다.

 

 지독한 허기에 나는 서둘러 텅 빈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을지도 몰랐다.

 

 밥이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설거지를 위해 혼자 남아 있던 옥순이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나를 보고 말했다.

 

 “너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 갔다 오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야.”

 

 “거짓말 마. 산에서 놀다 오는 길이지? 옷은 흙투성이고 가방도 없잖아?”

 

 도무지 믿어주질 않았다.

 

 옥순이가 저녁밥을 날라다 주었다.

 

 단무지에 보리투성이의 밥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수저를 든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옥순 누나. 소금 있어?”

 

 “소금은 왜? 단무지가 싱겁니?”

 

 “아니, 밥에 뿌려 먹으려고”

 

 “별일도 다 있네. 소금을 뿌려 먹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금 그릇을 가져왔다.

 

 나는 찬밥에 소금을 얹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 김 보모가 부엌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갓 부임해 온 그녀는 음성이 카랑카랑했다.

 

 소금을 얹어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본 김 보모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원장 아들은 과연 다르군. 설탕을 구경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매일 밥에 섞어 먹다니….”

 

 꾹 참아왔던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XX. 똑똑히 봐라 이게 설탕이냐? 이 엉터리 보모야!”

 

 설탕을 먹는다고 야단맞은 것보다 원장 아들이니까 라는 말에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원장 아들이라고 뭐 다른 게 있어? 이런 때만 원장 아들이라니, 제멋대로야.”

 

 김 보모에 대한 저항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온몸이 떨렸다.

 

 김 보모의 날카로운 음성이 식당 안을 울렸다.

 

 “말 다 했니? 원장 아들이 예절도 모르니? 선생한테 대드는 것 좀 보라니까.”

 

 “너 같은 게 무슨 선생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기야, 그만두지 못해?”

 

 옥순이가 말렸으나 나의 분노는 쉽사리 누그러들지 않았다.

 

 “원장 아들, 원장 아들 하지 마.”

 

 “원장 아들이니까 밥에다 설탕을 섞어 먹는다 그랬다. 그게 뭐 잘못됐니? 설탕이 먹고 싶으면 조용히 먹을 것이지 달려들긴 왜 달려드니?”

 

 김 보모는 어떻게 해서든지 위엄을 지키려고 애썼다.

 

 나는 식탁에 있던 소금을 집어서

 

 “자, 설탕이다.”

 

 하며 그녀의 얼굴에 냅다 뿌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식사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슬픔과 분노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 못된 녀석. 아무리 원장 아들이래도 가만 안 둘 테야.”

 

 볼멘소리로 고함치는 김 보모의 음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 * *

 

 한밤중에 잠입하듯 돌아온 나는 썰렁한 이부자리에 들었다.

 

 추위와 분노로 이가 딱딱 부딪쳤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도저히 김 보모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복수해 줄 것인가 궁리했다.

 

 ‘난 고아가 아니지 않은가? 저들과 같은 취급받는 것은 질색이다. 어머니는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 건가? 자식은 눈이 보이지 않아 이 고생인데도 어머니는 태평이시구나.’

 

 나의 가슴속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나는 늘 어머니의 따사로운 눈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니는 내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있어도 다른 원아들과 구별 지어 ‘너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특별히 애정을 보여준 기억이 없다.

 

 날이 밝았다. 나는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취사장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에 숨겨 넣어둔 모래를 움켜쥐었다.

 

 아주머니들을 돕는 체하며 큰 냄비 쪽으로 다가가 쥐고 있던 모래를 국 속에 털어 넣었다.

 

 이미 그릇에 퍼 놓은 직원들의 국에는 공을 들여 공평하게 집어넣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식당에 들어왔다. 직원들도 나타났다.

 

 김 보모의 모습도 보였다.

 

 제발 다른 테이블에 앉지 말아야 할 텐데….

 

 성공이었다. 그녀는 어머니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어머니가 수저를 드셨다.

 

 이윽고 직원들도 일제히 국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에서 엿보고 있었다.

 

 “어머!”

 

 한 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이쪽저쪽에서 터져 나왔다.

 

 직원 한 사람이 일어나 식당 아주머니들을 힐책했다.

 

 “국이 이게 뭐예요. 모래투성이잖아요!”

 

 식당 아주머니들은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랐다.

 

 범인 탐색이 시작되었다. 곧 결론이 났다.

 

 “아까 기가 와서 거들어 주더니만….”

 

 “또 그 녀석 짓이야.”

 

 직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내 눈과 마주쳤다.

 

 나는 잽싸게 유달산 쪽으로 튀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모른다. 그저 마구 달렸다.

 

 뒤돌아보니 철이 형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발이 빨랐다. 곧 따라잡힐 듯싶었다.

 

 붙잡히는 날엔 큰 난리가 날 판이었다.

 

 그는 토끼처럼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정상을 눈앞에 두었을 때 뒤를 돌아보니 철이 형이 단념한 듯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철이 형이 큰소리로 외쳤다.

 

 “용서해 줄 데니까 돌아와. 당장! 나중에 돌아오면 더 혼난다.”

 

 나는 듣지 않았다.

 

 산꼭대기를 향해 치달렸다. 드디어 꼭대기에 당도했다.

 

 철이 형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아득히 발아래 보이는 것은 수십 가구의 초라한 농가와 불에 타 없어지면 좋을 허름한 공생원 건물과 그 맞은편으로 펼쳐진 바다, 그리고 한가하게 떠도는 배와 섬들, 새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일등암이라 불리는 산꼭대기에 올라 그 한가로운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풍경에 싫증이 나자 길게 누워 잠을 즐겼다.

 

 새파란 하늘에 빨려 올라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원의 일 따윈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어머니와 직원들의 노여움이 걱정스러웠다.

 

 ‘어머니는 뭐하고 계실까? 직원들의 노여움에 전전긍긍하고 계실까? 다들 잔뜩 벼르고 있을 거야.’

 

 가을 해는 짧았다. 태양이 중천에 있을 때는 유달산의 단풍을 음미할 여유도 있어 좋았으나 점차 불안해졌다.

 

 바다 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아버지가 미웠다.

 

 광주에 식량을 구하러 나간 뒤 그대로 소식이 끊긴 아버지.

 

 사람들은 아버지가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어머니도 미웠다.

 

 오늘에야 희미하게 아들의 존재를 깨달았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아들을 찾아오라며 애태우고 계실지도 모른다.

 

 다시는 무관심하지 않겠다고 사과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어머니를 용서해 드릴까?

 

 대답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이야기해 보았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고 바람은 더욱 세찼다.

 

 불안감과 까닭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나는 산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발을 헛디뎌 5, 6m나 구르기도 하며 간신히 공생원의 뒤편에 당도했을 때 이미 사방은 캄캄했다.

 

 나는 곧장 실내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식당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원아들이 내 앞을 통과했다.

 

 달려가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발각되면 야단이 날 것이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등잔이 꺼졌다. 그러나 어머니 방은 불이 훤히 밝혀져 있었다.

 

 나는 살며시 방 안의 동정을 살폈다.

 

 직원들과 내 일로 언쟁을 하는 듯 보였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배도 고팠다. 취침 종이 울리기만 고대했다.

 

 변소 뒤편을 지나 강당 옆의 초급반(初級班: 초등학교 1학년~3학년생 교실)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주위가 고요해서 발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나는 고무신을 벗어들고 맨발로 걸었다.

 

 창 너머로 안을 엿보았다.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철이 형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초급반 방으로 뛰어들었다.

 

 “인마, 큰일 났어. 어머니는 울고 계시고 선생님들은 선생님대로 노여움이 대단하셔. 발견되면 대소동이 일어날 거야. 어쩔래? 도망가지 왜 왔어?”

 

 도망가다니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캄캄한 밤길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무섭다. 허기져 죽을 지경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다.

 

 나는 고무신과 담요를 들고 천장으로 숨기로 했다.

 

 친구들이 무등을 태워 도와주었다.

 

 천장은 강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상당히 높고 넓었다. 그리고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쥐들이 몰려다니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귀에 들렸다.

 

 초조함과 배고픔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님께 제발 이 밤이 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범치 형이 팔짱을 끼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나는 움찔했다. 하필이면 무서운 범치 형에게 걸리다니….

 

 범치 형은 내 손을 붙들고 우물가로 갔다.

 

 얼굴을 씻어주려는 건가 했더니 굵은 동아줄로 내 몸을 얽어 묶는 게 아닌가?

 

 원아들은 재미있다는 듯 우르르 떼 지어 구경했다.

 

 범치 형은 내 몸을 들어 올리더니 냅다 우물 속에 집어넣었다.

 

 아찔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사과해. 두 번 다시 나쁜 짓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꺼내준다.”

 

 우물 위로 보이는 작은 사각의 하늘을 범치 형의 험상궂은 얼굴이 덮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또 할 거야?”

 

 “…”

 

 “대답 안 하면 이대로 떨어뜨린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동아줄이 점점 내려졌다.

 

 몸통이 수면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가 되었다.

 

 “대답해! 꺼내줄 테니까!”

 

 범치 형의 목소리가 우물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 안 그럴께!”

 

 내가 외쳤다.

 

 “뭐라고?”

 

 “안 하겠다고!”

 

 내 몸은 슬슬 공중으로 올려졌다.

 

 나는 밧줄에 묶인 채 이글거리는 눈길로 범치 형을 쏘아봤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애써 울음을 참았다.

 

 그러나 동아줄이 풀리고 범치 형이 내 곁에서 떠나가는 것을 본 순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번번이 이런 일로 어머니를 난처하게 했던 나였지만 어머니는 항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한 번도 나에게 특별한 시선을 보내준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