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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학자공생재단

마운 , 아영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이번 수학 경시대회의 최우수상이 우리 반에서 나왔답니다. 아영아! 축하한다!”

  선생님이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셨다. 친구들이 선생님의 눈을 따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좋다기보다 부끄러워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띄엄띄엄 들리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했다. 그리고 곁눈질로 별이의 얼굴을 살폈다. 상을 받는 주인공이 별이가 아니라 나라서, 별이의 기분이 상했을까 봐 걱정이다.

  우리 반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별이. 별이의 엄마는 우리 학교의 학부모 위원이기도 하고, 별이를 위해 좋은 건 뭐든지 해주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별이는 거리낌 없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 시간에 발표도 잘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별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별아, 너도 경시대회 나가지 않았어?”

  별이 옆에 앉아있던 민주가 소곤거리며 말 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자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제발!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으면! 별이가 속상할 텐데 말이다. 나는 조심조심 별이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가 찌릿 째려보는 별이의 눈초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역시, 별이가 기분이 상한 게 틀림없다.

  “...다 아는 문제였는데, 몇 문제 실수했어. 아깝게.”

  나는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계속해서 별이 기분을 살폈다. 별이가 이번 대회에서 상을 못 받은 것을 혹여나 나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별이에게 미움받기 싫다. 별이와 경쟁 관계가 되기 싫은데, 자꾸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된다.

  “, 상 받으면 뭐 해. 그래봤자 고아인데.”

  “! 별이야!”

  황급히 별이 말을 가로막는 민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사실인데 뭐.”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앞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 말을 듣고 있는 척 하고 있었지만,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아... 그래. 별이 말대로 나는 고아.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왜인지 몸이 움츠러들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내가 도둑질 같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없는 게 잘못도 아닌데 죄스러운 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별이가 나한테 화가 나서 하는 나쁜 말이 고아라니. 나한테 그게 큰 허물인가보다. 별이는 고아도 아니면서, 무조건 사랑해주고 편들어주는 엄마가 있는데도, 내가 자기보다 공부 좀 잘하는 게 그렇게 싫은 걸까? 나는 별이를 이기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겨우 참아가며 수업 시간을 견뎌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급식실로 향했다. 나도 바쁜 것처럼 허둥지둥 교실을 나왔다. 하지만, 급식실로 향하지는 않고 슬쩍 교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원래 수업이 끝나기 전에 교문을 나가면 안 되지만, 지금은 너무나 답답해서 더는 학교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교 뒤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산에는 벤치도 있고 정자도 있는 공원이 있다. 가끔 학교가 끝나고 앉아있다 가곤 한다. 나만의 쉼터 같은 곳이다. 기분이 안 좋던 수업 시간 내내 이곳이 떠올랐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이곳으로 피신을 온 것이다. 물론 잠깐만 앉아있다가 들어갈 것이다. 그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

  낮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식판 부딪히는 소리. 고함지르는 소리,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 다 나와는 상관없는 소리 같다.

  “...고아...”

  오늘따라 이 말이 왜 이리 마음을 어지럽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고아라는 단어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 말이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긴 했지만, 내가 고아라는 것을 알고 난 사람들 눈빛이 불쾌할 정도로 측은하게 변하기에, 대체 어른들이 알고 있는 고아라는 단어의 뜻이 뭐기에, 잘 놀고 잘 먹고 있는 나를 저런 그렁그렁한 눈으로 보는 것일까, 그게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렇게 고아라는 단어를 찾다가, 단어 옆에 써 있던 한자를 보았는데 그 그림 같은 글자 때문에 한동안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른다. 孤兒. 외로울 . 어쩜 글자가 그렇게 외로워 보일 수 있는지. 문밖으로 쫓겨나 서 있는 것 같은 글자.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슬쩍 등을 붙이고 서 있는 글자의 모습이 꼭 나 같아서 가슴속이 아릿했다.

  “하아, 잠깐이라도 엄마를 갖고 싶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엄마, 아빠는 살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욱 울적해졌다. 나는 이 기분 나쁜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움직이는 것에 집중 하다보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에휴, 다시 학교로 들어가야지.”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벤치 옆에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아까는 보지 못했던 노란색 문이 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공원 한복판에 쌩뚱맞게 문이라니? 나는 산속에서 고래라도 마주친 것 같았다.

  ‘! 사람들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까, 사진 찍으라고 설치해 놓은 건가 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이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물웅덩이를 보면 일단 밟고 보는 유치원생처럼,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리고 별다른 고민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쿵!

  문을 통과하자마자, 누군가와 세차게 부딪혔다.

  “아야!”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눈앞에 불이 번쩍하고 보였다.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눈도 못 뜨고 머리를 감싸고 있는데, 무섭게 지르는 고함소리가 귀에 꽂혔다.

  “재수 없는 조센징!”

  허겁지겁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떠보니 이상한 옷을 입은 아저씨가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도망갈 때는 가더라도 조선 놈 하나는 없애고 간다!”

  무슨 소리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아저씨를 올려다 보았다. 도망이라도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난데없이 내 가슴팍을 걷어찼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 아저씨 왜 이러세요! 그만 하세요! 살려주세요!”

  나는 무섭기도 하고 이제까지 겪어본 적 없던 아픔에 놀라 소리쳤다. 뭘 잘못한 것인지 모르면서도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발길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공처럼 웅크리고 큰 소리로 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그만두시오!”

  나는 잠시 멈춘 발길질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앞을 막아준 사람 뒤로 얼른 숨었다. 나는 나를 보호해주는 이 든든한 사람이 행여나 나를 버리고 가버릴까 봐 온 힘을 다해 옷자락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위를 올려 보았는데, 놀랍게도 내 앞을 막아준 건 여자 어른이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저 이상한 아저씨가 이분도 때리면 어쩌지!’

  아저씨는 여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보아하니 그쪽, 일본인 같은데, 어서 피하는 게 좋을 거요. 애꿎은 동정심 발휘하느라 시간 낭비하다가는 조선인들한테 맞아 죽을 테니.”

  이상한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한 번 더 째려보더니 휑하니 사라졌다.

  나는 아저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여자분 뒤에 숨어 있었다. 치맛자락이 찢어질 정도로 꾹 잡고 있다가, 아저씨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얘야, 괜찮니?”

  나를 구해준 여자분이 손을 내밀며 물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데려다줄게.”

  “... ...”

  부모님 이야기에 입은 더욱 붙어버렸다. 우물쭈물하고 서 있는데, 여자분은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내 이름은 다우치 치즈코란다. 네 이름은 뭐니?”

  “...저는 아영이에요. 조아영.”

  나는 처음 들어보는 긴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정신없이 맞을 때는 몰랐는데 조금 진정되고 나니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할머니처럼 에구에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여자분은 이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래, 아영아. 갈 곳이 없다면 일단 나랑 가자. 다친 곳을 좀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지금은 이분을 따라가야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 움직이다가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날까 무섭기도 했다. 그건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일이었다.

 

  “얘들아, 새로운 아이가 왔나 봐.”

  다우치 치즈코님을 따라간 곳에는 나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와 치즈코님의 뒤에 따라붙으며 웅성거렸다. 아이들의 관심은 항상 부담스럽다. 아이들이 모여들면 이것저것 물어볼테고, 그러다 엄마,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또 그 불편한 분위기 가운데 있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아이들이 왜 이리 많을까? 이곳은, 집이 아니라 학교인가?

  “아영아 여기 잠깐만 기다리렴. 닦을 것을 가져올게.”

  치즈코님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둘러쌌다. 그리고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런 옷은 어디서 났니?”

  “아이고 피 좀 봐, 어쩌다 다쳤누~”

  눈을 반짝이며 몰려드는 아이들에, 나는 두 팔을 들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잠깐!”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아이들이 다시 질문을 할까 봐 최대한 빠르게 궁금한 것을 말했다.

  “여기 어디야?”

  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아이가 대답했다.

  “여긴 공생원이야. 우리 집이지. 너를 데려오신 분은 우리 엄마고. ~기 밖에 서 있는 남자 보이지? 저분은 우리 아빠야. ”

  “...뭐라고?”

  나는 대답을 듣기 전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저렇게 작은 여자분이 너희를 다 낳았다고?”

  깜짝 놀라 묻는 말에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다. 나는 아이들이 왜 웃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만약 네가 우리와 같은 처지라면, 저분들은 너의 엄마, 아빠도 돼.”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며 뭐가 그렇게 웃긴 지, 여자아이 하나가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 아버지가 없어. 일본인들에게 끌려가거나 돌아가셨어. 길에서 구걸하고 다니는데 윤치호 전도사님이 우릴 거둬 준거야. 너랑 같이 온 분은 치즈코님인데 일본인이라고 겁먹을 것 없어. 얼굴처럼 마음씨도 곱고 오르간 연주도 일품이셔.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시는데 저분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면 무어겠어? 그러니까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해.”

  “그럼 모두... 모두 고아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속을 꼭꼭 조이던 긴장의 끈이 탁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습관처럼 움츠리던 어깨를 펴고 말했다.

  “나도 고아야!”

  “아영아, 이리 와라. 상처 좀 보자.”

  치즈코님이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오며 말씀하셨다. 치즈코님은 나를 바닥에 앉히시더니 물에 적신 천으로 내 다리를 문질러주셨다.

  “저런, 멍이 들겠네. 긁힌 상처 좀 봐. ~하지만 흉지지는 않겠구나.”

  부드러운 손길에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는 내 다리를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치즈코님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았다. 처음 본 나를 위해, 그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다니. 그리고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나를 데리고 와 이렇게 따듯하게 보살펴주다니.

  ‘엄마...같다.’

  엄마.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겠지? 이렇게 든든하고 따듯한 느낌일 거야. 나는 같이 사는 할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할머니는 연세가 있으시기에 나를 돌보아주시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할 일이 많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사고를 치면 안 되었다. 부모도 아닌데 나를 맡아주시는 할머니를 속상하게 한다면 모두 나를 못된 아이로 볼 것이다. 물론 나는 다쳐서도 안 되었다. 괜히 다쳐서 오는 것도 철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혹 넘어져서 다쳐도 티를 내지 않았다. 그대로 둔 상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못 받고 스스로 사라지곤 했었다.

조용히 상처를 닦아주고 있는 치즈코님 앞에 앉아 있으니 목 뒤 쪽이 간질간질한 게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되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나는 공생원에서 며칠을 보냈다.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주변 어디에도, 내가 다니던 학교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뿐만 아니라 높은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변 분위기도 내가 살던 동네와 너무 달랐다. 도로는 없고 자동차도 없었다. 마치...옛날 세상처럼.

  “, 얘야 지금이 혹시 몇 년도니?”

  나는 아무 아이나 붙잡고 물었다.

  “그것도 모르니? 일본이 물러가는 이 좋은 해를 기억을 못 하다니, 너는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나 보구나. 지금은 1945년이지!”

  나는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나왔다. 내가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 여행이라도 한 건가? 어떻게 해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얼빠진 표정을 보던 아이는 내 등을 한번 툭 치며 말했다.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안 그러니? 그리고 나는 가 아니라 순이야. 다음엔 순이야~라고 불러.”

  “, . 으응. 대답해줘서 고마워 순이야. 나는...”

  “아영이. 맞지? 나는 너처럼 바보는 아니다 얘,”

  순이가 활짝 웃으며 다시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순이를 따라 웃었다. 어떻게 해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순이와 마주보고 웃고 있는 지금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 여기서 잘 지내봐야지.’

  나는 순이에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그럼 여기는 원래 치즈코님의 집이었던 거야?”

  “아니, 음악 선생님이었던 분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누추한 집에 있겠니. ~사랑의 힘이지!”

  순이가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순이의 황홀한 표정을 보니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 ”

  “그렇지! 처음 이곳은 윤치호 전도사님이 아이들 일곱 정도만 데리고 돌봐주는 정도였대. 길보다 집에 있는 게 나은 건 확실하지만 말이야,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이 웃을 수 있겠니? 우중충했지 뭐. ”

  “아무래도 그렇지. 부모님이 없다는 건 넓은 바다 가운데 혼자 버려진 기분이니까.”

  “맞아. 그런 아이들이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치즈코님이었어. 치즈코님이 공생원으로 자원봉사를 오면서, 오르간 소리도 들리고 아이들도 웃기 시작했지. 물론, 윤치호님도 웃게 되고 말이야. 둘이 사랑에 빠지셨거든.”

  순이는 볼을 붉히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밥다운 밥도 먹게 되고 말이야. 저기 보이는 남자애 있지? 쟤는 택이라고 하는데 쟤 동생이 죽을 때도 마지막을 지켜준 게 치즈코님이야. ! 택이야!”

  순이가 남자아이 하나를 불러세웠다. 그 아이는 키가 나랑 비슷했고, 빙글빙글 장난스럽게 웃는 웃음이 보기 좋았다.

  “택아, 네 동생 훈이가 아팠을 때, 치즈코님이 훈이를 업고 돌아다녔지?”

  “, 처음엔 일본인인 치즈코님이 참 마음에 안 들었어. 우리 아빠가 일본인 때문에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인사도 안 하고,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버릇없이 굴었는데 말이야. 전혀 서운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 옆에 있어 주었어. 특히 훈이가 죽을 때는...”

  택이의 눈이 금방 촉촉해졌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죽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이야, 몇 날 며칠을 훈이 옆에서 울어주셨어. 그때는 정말이지...”

택이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택이의 눈물을 보자 나도 눈물이 났다. 순이도 콧물을 훌쩍였다. 택이는 옷소매로 아무렇게나 눈을 닦더니 다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엄마 얘기하니까 엄마 보고 싶네. 엄마는 어디서 뭘 하고 계시지?”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엄마를 찾는 택이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때 바람이 예쁜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엄마가 연주를 시작했나 봐! 같이 가보자!”

  나는 친구들과 소리를 따라 달려갔다. 오르간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앞다투어 달리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이곳이 낯설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친숙하다. 처음엔 다른 친구들도 모두 고아라서 그런 것 인줄 알았다. 지금보면 그것이 아니었다.

  ‘같은 엄마를 두어서 그런 거야.’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건 정말 즐거웠다. 처음엔 모르는 노래라 입만 겨우 벙긋 거렸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금방 따라부를 수 있었다. 이건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었다. 연주를 하던 치즈코님이 뒤를 휙 돌아보더니, 갑작스럽게 내 얼굴을 폭 안아주었다.

  “아영이 목소리가 참, 곱기도 하다.”

  ‘엄마...’

  나는 두 팔을 벌려 치즈코님을 안았다. 가슴 속에서 뜨겁게 일렁이던 파도가 목 끝까지 차 올라왔다. 한 번이라도 엄마를 가져보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일본인 나와라!”

  나는 놀라서 치즈코님의, 아니,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나를 향해 웃어 보이시고는 벌떡 일어나셨다.

  “너희는 여기 있으렴.”

  나는 자꾸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처음 보았던 그 모습처럼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 문을 닫으셨다. 나와 친구들은 창문에 붙어 밖을 내다보았다.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들이 공생원 앞에 무리지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시오.”

  “무슨 일이긴! 벌을 주러 왔다! 우리를 괴롭힌 일본 놈! 우리 민족을 괴롭힌 값을 갚아야지!”

  잔뜩 화가 난 아저씨들은 다짜고짜 엄마 손을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엄마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들은 엄마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문을 벌컥 열고 나가려는데 나보다 먼저 아빠가 달려 나갔다.

  “여인 하나를 두고 뭐 하는 짓들이오!”

  “민족의 배신자! 당신도 벌을 받아야 해! 나라의 원수인 일본인과 함께 살다니 말이야! ”

  아빠가 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뻘건 아저씨들은 힘을 모아서 엄마, 아빠를 험하게 잡아끌었다. 저렇게 끌려가게 두면 엄마, 아빠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둬요!!”

  무서운 아저씨들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누가 소리친 것인지 찾았다. 나는 숨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소리쳤다.

  “당신들은 누군데 우리 엄마, 아빠를 때리는 거야! 그만 둬!”

  내 말이 끝나자 다른 아이들도 밖으로 우우 달려 나왔다. 몇은 아저씨 팔에 매달리고 몇은 엄마에게 매달렸다. 모두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를 괴롭히지 마세요!”

  크게 울며 매달리는 우리들을 보더니 아저씨는 벼락같이 화를 냈다.

  “야 이놈들아! 왜 나를 악당처럼 보이게 하느냐? 이 사람은 우리나라를 뺏으려고 한 일본인이야. 우리 민족을 고문하고, 없애려고 한 그 일본사람이란 말이야. 우리나라의 원수인 일본사람이 엄마라니 배가 고파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눈이 벌겋게 충열되어 소리치는 아저씨는 무서웠지만 아이들 누구도, 물론 나도, 물러서는 이는 없었다. 나는 내 앞을 막아 주었던 엄마처럼, 엄마 앞을 막아섰다.

  “일본인이라도 우리 엄마란 말이에요! 밥도 먹여주고 아플 때 돌봐도 준 우리 엄마란 말이에요!”  

내 옆에서 울고 있던 택이가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반대쪽에 있던 순이도 일어나더니 택이 옆으로 서 손을 잡았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 모두 약속한 것처럼 손과 손을 맞잡아 엄마, 아빠를 둘러쌌다. 그리고 소리쳤다.

  “우리 엄마, 아빠에요! 때리지 마세요! 엄마 아빠가 없으면 우린 다시 고아가 된단 말이에요!”

  무섭게 팔을 휘젓던 아저씨들는 우리들의 모습에 혀를 쯧, 차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생각했다. 비록 진짜 엄마가 아니라도, 처음 본 나를 위해 기꺼이 발길질에 막아 서고, 상처를 닦아주고, 음식을 주고 내 기분이 괜찮은지 살펴주는. 나의 웃음을 위해 오르간을 연주해주던 엄마를 지켜야겠다고. 아저씨들은 태산처럼 컸지만, 웬일인지 우리를 떼어내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흔들며 사라졌다.

  “얘들아.”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옆 친구의 손을 얼마나 꽉 잡았던지, 손을 놓고 나서도 저릿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엄마와 아빠를 지켜냈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엉엉 울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구한 게 아니고, 너희가 나를 구하는구나.”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택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택이 얼굴은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맑은 콧물이 나오다 못해 누런색의 콧물이 코 주변에 범벅이었다.

  “에구 이쁜 얼굴들이 울어서 엉망이 되었네. 들어가서 좀 닦자.”

  엄마도 택이 얼굴을 보고 웃으며 아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뜨거워진 마음을 안고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상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공원이었다. 갑작스런 다른 풍경에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딩동댕동

  번쩍 눈을 뜨니 학교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꿈인가?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는데, 그 모든 게 꿈이니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재빨리 바지를 걷어 다리를 확인해보았다. 상처나 멍이 없이 깨끗했다.

  정말...꿈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내 얼굴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진짜로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 맞다 ! 학교!’

  나는 내가 잠시 밖으로 나왔던 것을 기억해내고 빠르게 학교 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학교로 돌아가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이름을 속으로 자꾸 되뇌었다.

  다우치 치즈코. 나의 엄마 이름이다.

 

  비록 꿈이었지만, 엄마와 형제, 자매같던 친구들 사이에서 북적북적 있다가 다시 외로운 현실로 돌아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택이랑 순이도 보고싶다. 참 이상했다. 꿈속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꿈속에서 느낀 엄마의 사랑이었는데, 그 꿈을 꾸고나서 전처럼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주 먼 곳에 여전히 공생원 친구들이.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여러분! 내일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발표할 거에요. 잊지 말고 해오세요.”

  참 난감한 숙제다. 숙제 할 생각을 하니 현실로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난다. 나는 잠시 엄마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누구에 대해 조사를 해야하나 고민을 했다. 딱히 존경을 하고 싶은 어른은 없는데, 나는 고민을 하다가 도서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위인전에 나와있는 사람중에 아무나 골라서 적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가기 전에 학교 도서관을 향했다. 익숙한 위인들의 이름이 적힌 책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나는 어떤 책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존경을 하는 사람은 ...머리 속엔 한사람만 떠올랐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의 꿈속에 나왔던 사람일 뿐이다. 나는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도서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그 이름을 검색창에 쳐 넣었다.

  ‘다우치 치즈코

  “에엥?”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질렀다가, 도서관인 걸 깨닫고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마구 쿵쾅거리는 심장은 도무지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컴퓨터 화면에, 내가 꿈에서 본 얼굴이 떠 있는 것이었다!!

 

  타우치 치즈코(일본어: 田内 千鶴子: 19121031- 19681031)

  일제 강점기와 한국의 교육인, 사회사업가이다. 한국식 이름은 윤학자(尹鶴子).

 

  다우치 치즈코는, 아니 엄마는! 정말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헤어진 엄마의 얼굴을 본 것처럼 반가워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컴퓨터에 나와있는 엄마의 이야기를 모두 읽어내려갔다. 내가 몰랐던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읽는데, 분명 기쁜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나는 눈물을 티셔츠에 마구 비벼 닦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노트와 연필을 꺼내 엄마의 이야기를 옮겨 적어 내려갔다.

 

  “어제 말한 대로,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발표를 하는 시간이에요. 먼저 발표해 볼 사람! ! 아영이! 제일 먼저 손을 드네. 아영이가 발표해보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은 발표를 앞장서서 하려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별이는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눈빛에 나는 움츠러들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 눈빛이 두렵지가 않았다. 나는 들고 나온 숙제를 한번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한번 휘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을 떼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다우치 치즈코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일본인 이름에 딴짓하던 아이들도 일제히 나를 보았다.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본인? 훌륭한 한국 사람 냅두고 왜 일본사람을 존경한대? 매국노아냐?”

  별이의 비아냥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발표를 계속했다.

  “맞아요.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한국 이름도 있습니다. 바로 윤학자입니다. 일본인이 어떻게 한국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요?”

  어수선하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찾아본, 그리고 겪어본 엄마의 이야기를 했다.

  “다우치 치즈코는 일본인이지만, 일본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자신의 조국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되찾아 주기 위해 평생을 조선 아이들을 돌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조선에서는 일본인이라고 안 좋게 보고, 일본에서는 조국을 등졌다고 좋지 않게 보았지만, 그분은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윤학자님은 윤치호 전도사님이 공생원에서 돌보던 고아들을 함께 돌보았습니다. 처음엔 일본인이라고 싫어하던 아이들도 윤학자님의 진심어린 돌봄에 마음을 열었지요.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윤학자님이 일본인이라고 끌어내려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여사님이 얼마나 엄마처럼 잘 돌보아주었던지, 아이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윤학자님을 지키기도 했답니다. 여러분은 진짜 부모님이 아닌 분을 위해 위험에 맞설 수 있나요?”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엄마 이야기를 했다. 발표랍시고 엄마 자랑을 실컷 한거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 1950년에는 식량을 구하러 나갔던 윤치호님도 행방불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윤학자님은 400명이나 되는 고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홀로 끝까지 고아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렇게 고아들을 돌본 공로를 인정받아 윤학자라는 한국 이름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분은 내 엄마입니다! 윤학자. 그건 우리 엄마 이름이라고!’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다르다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면 보석같은 성품이나 아름다운 마음씨를 놓치기 쉽습니다. 다우치 치즈코님의 이름만 듣고 일본인이라고 무조건 싫어하는 것도 그래요. 일본인이지만, 우리나라의 고아들을 돌보아 준 좋은 분이지요. 저는 편견도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고아라서 잘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고요.”

  아이들이 내 입에서 고아라는 단어가 나오자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내뱉자 이상하게 시원했다. 그래. 나 고아야. 하지만 뭐. 고아여도 괜찮아.

  “고아라는 말이 참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외로움을 알기에 고아들의 마음을 깊이 공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커서 윤학자 여사님처럼 고아들에 웃음을 찾아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별이의 얼굴은 새빨개져있었다. 나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더욱 어깨를 펼쳤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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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인터뷰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저를 소개할 일이 딱히 없었는데, 갑자기 저를 소개하려니 머리가 멍해지네요.

저는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게 제일 어려운 거니, 그 어려운걸 해내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을 키우며, 해주고 싶은 좋은 말들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걸 어떻게 잔소리가 아닌 것처럼 아이들에게 전할까 고민하다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저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일이 되었네요.

 

 

수상소감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우선, 정말 기뻤습니다. 결과를 보자마자 음악 없이 마구 춤을 추었고요.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받는 게 저라니! 믿기지가 않아서 개별 연락이 오기 전까지 마음 졸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고아나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 동화를 써 볼수 있어 기뻤습니다. 대상까지 받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어요.

고아라고 하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센터에 사는 아이였으니 지금 돌아보면 고아였던 셈이지요. 제가 어릴 때는, 모든 선생님이 그런 것이 아니었으나,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선생님이 있곤 했는데,

점심을 먹다가 음식을 남겼다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그 아이를 심하게 때렸었습니다. 어릴 때도 충격이라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 저는 나도 맞지 않으려면 말을 잘들어야 겠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아니었어요.

아마 저는 잘못을 해도 그만큼 맞지 않았을 겁니다. 부모님이 계시니까.

크면서 종종 그 아이가 떠오를 때면, 선생님은 그 아이가 고아라서 그렇게 심하게 혼을 냈다 싶어, 풀 곳도 없는데 분노가 치밀고는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도 단순히 고아라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아이들도 있을 테지요. 그런 편견에서 자유로운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마운 아이, 아영속의 아영이처럼, 너무도 잘 커주고, 태어난 자체로도 고마운 존재인 아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본인을 온전히 드러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화를 썼습니다.

   

 

평소 고아나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나요?

생각을 깊게 하기 시작한 사춘기 때부터 항상 생각해 온 것이 있습니다. 제가 누리는 일상은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우연인거라고. 우연히 평화롭게 지내듯, 우연히 사고를 만날 수 있고, 나도 나의 잘못 없이 다칠 수 있으며, 소중한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기에 고아나 소외된 사람들 또한 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연히 그 상황에 놓인 것 뿐이니까요. 저는 우연히 가진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나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뵙는 봉사활동도 했고, 저의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아이들 이름으로 전국 천사 무료 급식소에 매달 만 원씩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도움을 준다지만, 결코 제가 우월해서가 아니고, 줄 수 있을 때 주는 게 맞다고 여겨왔습니다. 나중에 우연히, 저도 도움받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돌고 도는 도움과 관심이 세상을 더 살만하게 만들길 바랍니다.

 

 

전부터 윤학자 여사에 관해 알고 계셨나요? 혹은 윤학자 여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은 어떤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윤학자 여사님에 대해서는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이번 공모전은 저에게 의미가 컸습니다. 다우치 치즈코, 이름을 접하고, 윤학자 여사님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영상으로 제작된 이야기도 보고, 웹툰도 보고, 인물 설명도 읽어보며, 윤학자 여사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감히 제가 대단하다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조선인이 조선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일본인으로써 배척을 당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위해 곁을 지킨 것. 그리고 윤치호 님이 사라지고 나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준 것.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특히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은, 아이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여사님을 지켰던 부분입니다.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싫은데 좋은 척을 못 하고, 두려움에서 오는 복종은 오래갈 수 없죠. 아이들이 스스로 나서서 여사님을 지킨 것은, 그분이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을 동화를 쓸 때 살리려고 부던히 노력했구요. 우리가 여사님의 일화라고 보는 일부분의 이야기 말고도, 수많은 세월 동안, 하루하루를,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아이들을 지켰던 그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으신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이런 큰상을 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