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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고아의날

 시민장도 끝났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원 출신들은 ‘삼오’가 지나자 모두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갔고 시민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나는 갑자기 허탈감을 느꼈다.

 

 나 역시 고아가 된 것이 아닌가?

 

 누이동생 향미와 영화가 불쌍했다.

 

 크고 작은 320명의 고아들은 나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호소하는 듯한 시선을 피부로 느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 이내 이사회가 열렸다.

 

 원장을 지명하는 것이 주요 의제였다.

 

 이사회는 나를 원장으로 임명했다.

 

 사람이 그렇게도 없었던가? 나 같은 애송이를 원장에 앉히다니. 더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 공생원을 하나님이 버리시는가?

 

 식량을 구하러 떠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것, 일본 여자는 한국 고아들을 키울 자격이 없다 하여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넘어가던 공생원.

 

 이제 해방 20년 만에 얼었던 강물이 녹듯이 한·일 두 나라가 해빙기를 맞는 이때야말로 고아를 위해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어찌하여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셔야만 했는가?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사랑을 베푼단 말인가?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나 말고 총각 아버지가 또 어디에 있을까?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게는 공생원을 이끌어나갈 힘이 없는 것 같았다.

 

 불안해지고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이상하게 빨리 눈을 떴다.

 

 운동장으로 나갔다.

 

 피부에 와닿는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아버지가 짓다 만 석조 건물이 어슴푸레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작품이었다.

 

 고아들에게 시달리던 어머니는 아버지 계획대로 2층까지 올리지 못하고 1층만 마무리 지었다.

 

 난파된 배를 뜯어 기초 삼아 지었다는 강당.

 

 아버지 윤치호가 그 강당을 위해 “맨손으로 짓습니다, 맨손으로 짓습니다.”하고 기도하여 10년 만에 완성했다는 건물.

 

 무엇 하나 부모님의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길가에 놓여 있는 돌조각 하나에도 어머니의 향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어디선가 어머니가 곧 걸어오실 것만 같았다.

 

수정됨_2._공생원_아이들에게_사랑을_주는_윤부부.jpg

 

 나는 강당을 향해 걸었다.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이 시간에 누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까이 가보니 강당 안에서 누군가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가니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모와 원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위해 눈물로 간구하는 기도였다.

 

 “진리와 소망과 사랑 가운데서 40여 년 동안, 이 공생원을 사랑하시어 수천 명의 고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커갈 수 있게 해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그러나 불의에 어머니를 잃고 다시금 고아가 된 아이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진정으로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젊어서 아직 경험이 없는 그의 아들 기를 고아들의 아버지로 삼으신 것도 당신의 뜻인 줄 압니다. 고아들 속에서 고아와 함께 자라난 당신의 아들이 누구보다도 고아들의 슬픔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이게 웬 말인가?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던 내 마음이 갑자기 밝아졌다.

 

 새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그 기도가 원아들의 기도였음에 나는 더욱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죄 많고 부족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자신의 장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저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거울삼아 아버지, 어머니가 걸어간 그 길을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작은 것을 크게 나눠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아버지의 용기를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어머니의 겸손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고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제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그 어떤 곳에서보다 이 공생원에 사는 아이들을 통해 나타나게 하옵소서.”

 

 안갯속을 헤매던 나는 비로소 눈앞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걸어갈 길은 이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다. 그것 이상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마음으로 다짐했다.